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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가? (2016-09-01, 장규석 목사)

예수님이 일을 내셨다. 썩어지고 망하러 달려가는 인생 역사에 죄를 사하시는 대속과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새롭게사는 영원한 생명의 일을 내셨다. 그리고 더 중요한 큰 사고를 치셨는데 우리들의 손을 꼭 잡으시고는 땅끝까지 이 복된 소식을 전하고 지키게 하라고 요청하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그 일에는 반드시 당신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임마누엘’의 약속도 함께하셨다. 소위 ‘Operation Immanual’이다.

선교. 그러고 보니 이것은 선교위원회나 선교사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예수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미션이다. 크리스천이 누군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스도의 도를 추종하고 따라 살겠다고 하며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고 그 나라의 대사격으로 산다는 이들이 그의 부탁하신 미션을 이루기 위해 또는 그분의 일을 함께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가? “크리스토퍼 라이트라는 학자가 그의 책 ‘하나님 백성의 선교’라는 책 서두에서 물은 질문이다. 이런 비슷한 돌직구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자의 배경과 질문의도를 서둘러 파악하려 하겠지만, 성경은 명확하게 대답한다.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우리의 존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는 위임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이어 불순종으로 망가져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작동하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은 다시 복을 가져오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신다.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시고는 복을 주시고 복이 되게 하겠다고 선언을 하셨다(창12:1-3). 리처드 보캄은 이 사건을 통해 ‘복이란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풍성하게 열매 맺어 나가는 과정’ 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의 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열방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 그 자체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복이 되고 복이 흘러 열방으로 가는 이야기가 구약성서를 지나 신약 시대에 이르고 있다.

과연 예수님도 복을 강조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기에 복되고 애통해 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정리해 보니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성품이 삶 가운데 드러나는 일이며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복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다. 결국, 복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였다. 하나님의 법과 은총 아래 사는 것이 결국 복된 소리, 복음이 된 것이다. 일관된 톤으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울러 우리도 어떤 문화적 배경이나 인종적 배경이든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가족이요 아브라함과 같이 복으로 부름 받은 존재라고 선언하셨다(갈3:8)!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이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복의 주인공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았다면 아브라함의 사명 곧 예수님의 사명, 선교의 사명을 아울러 받아서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는 복의 통로와 하나님 나라의 대사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떠남에 순종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는 순종’을 이루어 냈다. 우리의 사명 역시 땅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속적인 복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데려와 그들도 복되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떠났고 예수님도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28:19)고 떠남을 명령하셨다. 열린문 공동체의 순종하는 자들이 그 사명에 순종했다. 이번 여름에도 한어권 영어권 성도들과 넥스트 젊은이,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들이 함께 단기선교팀에 합류하여 다녀왔다. 미국 내 여러 도시 속에 병들고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는 일에,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복된 인생으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셨다는 어마어마한 ‘천기누설’을 하고 왔다. 페루의 가난한 동네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쿠바의 21세기 초대교회의 낡은 양철 지붕 아래로, 그리고 그리스의 난민들의 눈물 속으로, 한반도내 동포의 탈북민에게, 키르키스스탄 ‘오쉬’로도 선교의 순종은 이어졌다.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복이 퍼져 나가는 역사이다. 그 우주적 선교의 역사에 동참한 단기선교팀과 이를 위해 기도와 수고로 함께한 많은 가족과 성도들 그리고 선교축제에서 땀 흘려 선교모금에 동참해 주었던 오이코스 가족들도 선교역사에 함께 한 주역들이다.

또 다른 숙제. ‘밝은 빛을 비추는 빛의 근원지는 얼마나 밝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삶의 자리를 고민하게 하는 말이다. 열방을 복되게 하는 사역은 일 년에 열흘 미만의 시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낯선 이들에게 복을 전하는 일보다 낯익은 내 삶의 현장- 열방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숙제인지 모른다. 단지 나의 익숙한 공간을 떠남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뿐 아니라 이곳 열방 또한 복되게 하는 일에 마음을 다잡는 일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말한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교회를 두셨으며 교회는 곧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워졌다.” 혁명적으로까지 들리는 그의 선명한 이야기가 열방을 복되게 하는 데 부름 받은 열린문 공동체와 이번 여름 뜨겁게 수고한 단기 선교팀원들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를 기도한다. 임마누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